[베스트 인플루언서] 34년차 관상가 유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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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인플루언서] 34년차 관상가 유튜버 김민정 돈복 왔을 때 마음가짐이 중요…1년짜리 운, 10년 될 수도 테헤란의 벤처 역술가에서 K-컨설턴트로 해외 시장 개척 꿈꿔 관상가를 찾는 손님들의 주문은 제각각이다. 자식이 명문대에 갈 수 있을지, 지금 투자하면 이익을 낼 수 있을지, 임원 중에서 누굴 자르고 누굴 승진시켜야 할지, 과연 내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지. 이래저래 질문은 달라도 속내는 같다. 돈, 재물, 운. 그 흐름을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관상가는 얼굴을 보되, 얼굴만 보지 않는다. 얼굴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읽고 표정에서 마음의 굴곡을 짚는다. 이목구비의 생김새만 갖고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건 관상이 아니다. 심상(心想)이 빠진 관상은 그냥 구경거리다. 통계다. 일란성 쌍둥이의 삶이 과연 똑같던가? 김민정 관상가는 내로라하는 정재계 인사들의 관상을 봐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심상이 곧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게 그의 원칙이다. 김정훈 기자 ━ 왕십리 스승 밑에서 관상 배운 여중생 “중요한 건 마음이다. 어떤 관상의 사람이 무슨 심상으로 인생의 고비를 마주하려는지를 읽어야 한다. 그래야 좋은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다. 그저 얼굴만 본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얼굴처럼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관상은 무의미하다.” 김민정 관상가의 말이다. 내로라하는 유수의 기업인이나 여야 불문 정치인이 그를 찾는다. 지면에 거론할 수 없지만 기자가 확인한 정치인 중에는 정계를 주름잡은 인사도 넘쳐난다. 대선 후보는 말할 것도 없다.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기업인도 상당수. 그는 30만 명 회원을 둔 한국역술인협회의 수석부이사장이다. 스승은 고(故) 최철웅 선생이다. 언사가 올곧아 권력의 고초도 당했다. 전두환의 기세가 꺾일 것이다, 조만간 백담사에 기거한다고 예견해서다. 최철웅 선생은 밑에 제자를 두지 않는 독고다이였다. 퇴역한 군 고위 장교나 공직자들이 관상을 배워보겠다고 찾았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손님도 고관대작이 아니면 안 받았다. 지인 추천을 받아도 급수가 돼야 했다. 왕십리에 있는 그의 자택은 문턱이 높기로 유명했다. 김민정 관상가는 중학생 때 그 최철웅 선생을 만났다. 무슨 연유였을까. 그는 1971년 상류층이 산다는 서울 동부이촌동에서 나고 자랐다. 부친이 무역사업을 했고 모친은 요식업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유례없는 경제 호황기에 성공을 일궜다. [베스트 인플루언서] 34년차 관상가 유튜버 김민정 돈복 왔을 때 마음가짐이 중요…1년짜리 운, 10년 될 수도 테헤란의 벤처 역술가에서 K-컨설턴트로 해외 시장 개척 꿈꿔 관상가를 찾는 손님들의 주문은 제각각이다. 자식이 명문대에 갈 수 있을지, 지금 투자하면 이익을 낼 수 있을지, 임원 중에서 누굴 자르고 누굴 승진시켜야 할지, 과연 내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지. 이래저래 질문은 달라도 속내는 같다. 돈, 재물, 운. 그 흐름을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관상가는 얼굴을 보되, 얼굴만 보지 않는다. 얼굴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읽고 표정에서 마음의 굴곡을 짚는다. 이목구비의 생김새만 갖고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건 관상이 아니다. 심상(心想)이 빠진 관상은 그냥 구경거리다. 통계다. 일란성 쌍둥이의 삶이 과연 똑같던가? 김민정 관상가는 내로라하는 정재계 인사들의 관상을 봐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심상이 곧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게 그의 원칙이다. 김정훈 기자 ━ 왕십리 스승 밑에서 관상 배운 여중생 “중요한 건 마음이다. 어떤 관상의 사람이 무슨 심상으로 인생의 고비를 마주하려는지를 읽어야 한다. 그래야 좋은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다. 그저 얼굴만 본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얼굴처럼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관상은 무의미하다.” 김민정 관상가의 말이다. 내로라하는 유수의 기업인이나 여야 불문 정치인이 그를 찾는다. 지면에 거론할 수 없지만 기자가 확인한 정치인 중에는 정계를 주름잡은 인사도 넘쳐난다. 대선 후보는 말할 것도 없다.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기업인도 상당수. 그는 30만 명 회원을 둔 한국역술인협회의 수석부이사장이다. 스승은 고(故) 최철웅 선생이다. 언사가 올곧아 권력의 고초도 당했다. 전두환의 기세가 꺾일 것이다, 조만간 백담사에 기거한다고 예견해서다. 최철웅 선생은 밑에 제자를 두지 않는 독고다이였다. 퇴역한 군 고위 장교나 공직자들이 관상을 배워보겠다고 찾았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손님도 고관대작이 아니면 안 받았다. 지인 추천을 받아도 급수가 돼야 했다. 왕십리에 있는 그의 자택은 문턱이 높기로 유명했다. 김민정 관상가는 중학생 때 그 최철웅 선생을 만났다. 무슨 연유였을까. 그는 1971년 상류층이 산다는 서울 동부이촌동에서 나고 자랐다. 부친이 무역사업을 했고 모친은 요식업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유례없는 경제 호황기에 성공을 일궜다. 하지만 1986년 사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부친은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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